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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신  자 (朴信子) - 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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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신자의 생애

 국내 선수로는 가장 먼저 세계 MVP를 따낸 슈퍼우면. 60년대 국내팬들의 최고의 인기를 모으며 농구붐을 일으키는데 큰 몫을 한 히로인이기도 하다.
 박신자는 1941년 1월 23일 서울 태생으로 숙명여중고등학교를 거쳐 숙명여대 영문과, 이화여대 대학원 체육학과, 미국 스프링필드대학원 체육학과를 나왔다.
 여고시절 그는 176cm의 장신에다 뛰어난 센스로 골밑을 장악, '백년에 하나 나올 만한 대기'라는 평을 들었다.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한 금융팀간의 싸움도 치열했다. 당시로서는 사건이라고 할 만한 화제를 뿌리며 상업은행에 들어간 박신자는 금융단 경기에서는 물론 당시 인기 이벤트였던 박정희장군배 동남아 농구대회에서 한국의 승리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박신자의 진가를 확인한 것은 63년 한국농구의 첫 세계무대 도전이었던 페루에서의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8위를 한 것. 당시의 경기내용으로 보아 한국이 상위그룹에 올라갔다면 4위정도는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이때의 분을 푼 것이 67년 체코 프라하에서의 세계선수권 두번째 ㅜㄹ전, 여기서 박신자를 주축으로 한 한국팀은 놀라운 기세로 동구권 강호들을 제치고 2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여기서 2위팀 주장 박신자가 대회 최우수상르 받은 것이다. 이때의 황금멤버들은 김추자, 신항대, 주희봉 등으로 이들이 한국 여자 농구세계화의 초석을 이루었다.
 이어 공산권이 불참한 도쿄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는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박신자의 존재는 더욱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에 앞서 65년에는 처음ㅇ로 아시아선수권(ABC)을 차지하는데도 그의 공헌이 컸다.
 국민들의 스타 박신자는 68년 절정기에 돌연 은퇴를 선언, 아쉬움을 남겼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군 소속의 문관 브래드너와 결혼, 또 한차례 화제를 뿌렸다.
 그녀가 농구코트에 돌아온 것은 70년대 말 신용보증기금팀의 사령탑을 맡으면서였다. 그후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농구담당관으로 또다른 행정과 외교 솜씨를 발휘했으며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미국 여자농구 명예전당에 최우수선수로 헌액되었다.
 언변과 문필력 또한 뛰어나며 골프에서도 아마추어 이상의 수준에 올라있다.  
 70년대 초 한국여성스포츠 초대회장으로 공헌, 윤곡상을 수상했으며 5·16 민족문화상, 국민훈장(석류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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