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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체육인물  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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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  조 (金永祚 1923-1981) -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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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일본데이쿄상업-와세다대

위치 : 포수(우투우타)

소속팀

일본아사히(44년), 조선식산은행(46-47년), 금융조합(47-55년), 경기중 감독(49년), 전서울군(49-58년), 중앙고(55-59년), 농업은행(56년), 공군(56년-57년), 한국운수(58년), 농업은행(59년), 농협 감독(60-72년)

수상

제4회 월계기쟁탈도시대항 타격상(.571-49년)
제5회 월계기쟁탈도시대항 타격상(.727-50년)
제9회 월계기쟁탈도시대항 홈런상-54년
제1회 전국실업쟁패전 홈런상-55년
제10회 월계기쟁탈도시대항 홈런상-55년
제2회 전국선수권 홈런상-56년
대통령배실업추계연맹전(우승) 감독상-56년
대통령배실업추계연맹정(우승) 감독상-60년
대통령배실업춘계연맹정(우승) 감독상-61년 
제6회 한미친선 홈런상-62년
대통령배실업추계연맹정(우승) 감독상-62년
제8회 전국선수권(우승)감독상-62년
제12회 백호기군실업쟁패전(우승)감독상-62년
제13회 백호기군실업쟁패전(우승)감독상-63년
대통령배실업연맹전(준우승) 우수감독상-65년
제9회 아시아선수권(우승) 감독상-71년
국민훈장목련장(제9회 아시아선수권우승공로)

경력

조선대표, 국가대표
46년 광복1주년기념 조미친선대회에 광복 후 최초로 구성된 조선대표팀 포수로 출전
48년 금융조합연합회팀을 감독 주장겸 선수로 전국실업추계연맹전에 출전
49년 제5한성실업춘계연맹전에 출전
54년

 

  김영조는 1922년 전북 진안군 주천면 태생으로 195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포수 출신. 60년대에는 지도자로 한국야구계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진안에서 인삼밭을 운영하던 아버지 김길현과 어머니 박성녀의 1남 3녀 중 아들로 태어난 그는 8살 되던 1930년 어머니, 세누이와 함께 3년 전 미리 일본으로 건너간 아버지를 쫓아 일본으로 갔다.
일본 데이쿄상고를 거쳐 1943년 와세다대학에 입학했으나 2차대전의 와중에 1년여의대학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했다. 테이쿄상고 시절에는 4번타자 겸 주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광복 후 남전, 식산은행을 거쳐 1948년 지금의 농협 전신인 금융조합중앙회에 투신, 명포수 겸 강타자로 이름을 날렸으며 73년 정년 퇴직 때까지 농협에서 외길을 걸으며 감독으로 팀을 정상에 올려 놓았다.
  1954년 제1회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를 비롯 55년 2회, 59년 3회 대회에서 부동의 4번 타자 겸 포수로 국가대표선수생활을 했다. 1963년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 아시아선수권대회(서울) 첫 패권을 일궈냈고 당뇨병으로 고생하고 있던 1971년에는 대표팀 감독으로 제9회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의 감격을 맛보았다.
   선수와 지도자로 50년대와 60년대 한국야구계를 풍미했던 그는 지병인 당뇨병으로 1981년 3월 25일 작고했다.
그는 1남 2녀 중 외아들인 승수군도 중앙고, 구려대, 농협에서 아버지의 길을 따라 같은 포지션인 포수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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