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5월 체육인물  상위

 4월로

안  종  호(안종호) -배구

 6월로

 

  • 학력 및 경력

체육출전경력 및 체육활동

1941년 안종호가 보전을 졸업하고 체신국 선수로 뛰던 때다. 체신의 주력인 일부 일본선수들이 대동아전쟁으로 대거 징병에 끌려간 뒤여서 선수가 모자라 체신은 조선신궁대회에도 출전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그대로 쉬고 있을 수도 없어 배구경기장으로 나갔다. 한참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데 심판이 절대부족하여 걱정하고 있던 본부측은 점심시간에만 심판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현역선수가 중요한 공식경기의 심판이라니 좀 상식 밖이지만 사정이 사정인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맡은 두게임은 경성사범-동래고보, 평양사범-용산중학대전으로 동래고보와 평양사범은 한국인선수로 구성된 팀이었다. 다시말해서 한국과 일본이 대결하는 어려운 게임의 심판을 보게된 것이다.  그는 냉정을 잃지 않고 비교적 흔들리지 않고 경기를 진행했다.
경기결과는 돌래고보와 평양사범, 두 한인팀의 승리로 끝낫다. 어느쪽을 봐주었다기기보다 실력 그대로의 결과였다. 그런데 협회측의일본인 임원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으 표시했다.  안종호는 어이가 없었다. 양심에 따라 판정했고 사실 진행상 아무런 미스가 없었건만 트집을 잡으려는 것을 어떻게하랴, 제1고보시절 그렇게

  • 상훈

 

bar_s_1.gif

HOME | 환영사 | 방명록 | 자료실
Copyright(c)1999 -2007 SPOSEUM Co.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