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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재  은 (崔在銀) -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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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구락부를 결성하고 서울중심으로 후진들을 발굴, 육성하는 데 크게 기여한 3인방의 한 사람인 최재은은 개척기의 빙상인들을 결속시키고 인화를 꾀하는 데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공로자이다. 비록 경기면에서는 오랜 동안 명성을 떨치지 못했으나 김용구, 엄점득과 함께 한강중심으로 한 빙상의 터전을 만들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백구구락부의 확고한 전통을 다져놓았다.
그의 장점은 리더십이 탁월하다는 것. 서울 명문가에서 태어난 엘리트로 예절이 바르고 두뇌 명석하여 선후배들로부터 많은 신망을 받았는데 특히 지방색의 차별이 없이 모든 일처리가 공평 무사했다.
한번은 서울태생의 백구선수들이 모여 강계 등 평안도출신들을 따돌리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자 최재은은 "우리가 일본, 만주아 싸워 이겨야 하는 판국에 좁은 이 나라안에서 서울, 평안도를 가려서야 될 말이야"고 꾸짖으며 단호하게 처리했다. 때로 선수들끼리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감돌 때는 돈암동에 있는 자택으로 선수들을 불러모아 놓고 "우리는 빙상선수다. 겨울이면 얼음이 단단히 얼 듯히 우리도 굳게 뭉쳐야 한다"라고 역설하곤 했다.
그래도 선수들이 가끔 말썽을 부리거나 훈련을 소홀히 할 때는 한 겨울 한강에 집합시킨 뒤 먼저 윗통을 벗고 나서서 빙판을 달렸다. 또는 자신이 앞장서서 얼음 속 강물에 뛰어 들면 나머지 선수들이 어쩔 수 ㅇ벗이 뒤를 따랐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통솔방식은 먼저 솔선수범하고 선수들을 끌어안는 스타일이었다.
최재은은 빙상기술에서도 이론적으로나 실제 훈련방식에서나 최고의 수준에 올라 있었다. 그가 휘문고보를 거쳐 경성고공(서울공대의 전신)에 진학한 것을 보면 학업성적도 뛰어났으며 머리가 명석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재은은  광복이후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을 맡아 올림픽 첫 출전과 이에 앞서 국내 합동훈련의 비용을 사재로 출연하는 등 재정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워낙 가정환겨잉 부유하기도 했지만 뒤에 위스키공장을 만들어 경영하면서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따라서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을 역임한 상징적인 빙상인으로 서울출신의 최재은, 신의주출신의 김정연 양인의 공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이야기 한국체육사16 빙상(상), 은방위의 질주, 이태영 지음,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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