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3월 체육인물  상위

 2월로

남 승 룡 (南昇龍)

 4월로

 

  • 학력 및 경력

     양정고보
    메이지대학
    철도국 근무
    전남대학교수역임

  • 체육출전경력 및 체육활동

     

  • 상훈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

남승룡 생애
1912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에 올라와 육상의 명문 양정고보와 메이지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졸업 후 철도국에 근무하였으며, 전남대학교수를 역임하였다.
 베를린올림픽의 마라톤 동메달리스트인 남승룡은 우리 나라 육상계에 손기정 선수의 영광에 버금가는 영예를 안겨다 준 선수이다.
 제10회 로스엔젤레스에서 개최된 올림픽 경기의 마라톤부문에서 김은배 선수가 6위를 하고 권태하 선수가 9위를 차지할 무렵 남승룡은 스피드 있는 장거리 선수로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1932년 10월 경성운동장(지금의 동대문운동장)에서 개최된 제8회 전조선육상경기대회에서 그는 5천미터와 1만미터를 모두 제패하였으며, 1934년 9월 미·일 대항 경기대회에서도 5000m에서 우승하였다.
  1936년 5월 11일 올림픽대회 파견 마라톤 선수 최종 선발전에서는 1위를 하여 올림픽 대표선수로 선발되어 2위를 차지한 손기정 선수와 함께 베를린올림픽에 참가하였으며, 이 대회에서 당시 장거리 부문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 핀란드 선수를 뒤쫓다 페이스를 너무 늧춰 아깝게 3위에 머물렀다. 2시간 31분 42초로 2위를 한 하퍼 선수와는 19초 간격으로 골인하였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남승룡은 한민족의 기개와 마라톤 왕국의 이름을 세계 만방에 과시 하였다.

  남달리 신념이 강한 남승룡은 대회가 있을 때마다 각국의 기자들에게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임을 눈물로 호소함으로써 스포츠를 통한 또다른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1947년 보스톤마라톤대회에 코치겸 선수로서 손기정 감독과 스텝을 이루어 서윤복의 우승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언제나 새벽 5시에 일어나 등산을 하고 체조 등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으며, 틈틈이 여행을 즐기며 사는 영원한 육상인이이며 체육인이다.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으며, 경기력향상 연구기금을 받고있다.

 

bar_s_1.gif

HOME | 환영사 | 방명록 | 자료실
Copyright(c)1999 -2007 SPOSEUM Co.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