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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체육인물  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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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  용(李源容1896~1971)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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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력 및 경력

     본적 : 경성
    오성고보(협성실업전신)
    오성구락부(13~17년)-중앙YMCA(17년)-고려구락부(17년)
    조선체육회 초대이사(20~22년)
    미국프로올스타침초청경기(22년 12월)
    조선심판협회창립(23년5월)
    조선일보 기자(29~33년)
    조선체육계발행(33년7월)
    조선야구협회창립발기인 및 동부회장(46~47년. 49~57년)

  • 상훈 및 저서

     49대한체육회 창립30주년기념공로장
    조선야구소론

 주요 활동내용

한국야구의 기틀을 다지고 육성시킨 공로자로 조선야구협회 창립 발기인.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천도교서 보성중학 재단을 인수하자 오성학교로 이적한 뒤 야구와 인연. 중앙기독청년회(YMCA) 영어반에서 윤치영을 비롯한 야구인들과 친교
09년 동경유학생 1차 모국방문경기에 자극을 받아 13년 오성학교출신들을 주축으로 오성구락부결성
14년 7월 3차로 모국을 방문한 동경유학생 타이거팀에 1승1패한 뒤 10월 10일 훈련원서 일본인들로 구성된 용산철도구락부을 14-13으로 격파
17년 7월 동경유학생모국방문단 4차 방문 경기에 중앙기독청년회 소속으로 출전
17년 오산 구락부와 중앙 YMCA를 합병 고려구락부 결성
 20년 7월 13일 이중국 변붕현 등과 1919년에 조직된 일본인 중심의 조선체육협회에 맞서 조선체육회(초대회장 고원훈)를 결성, 첫 행사로 11월 4일부터 3일간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10개팀이 참가한 가운데 제1회 전국야구대회(중학부+배재고보 우승, 청년부=전배재 우승)개최
22년 이중국 김병태의 협조와 조선일보 후원으로 일본에 원정 중인 미국프로올스타팀을 사비로 초청해 12월 8일 용산 만철구장에서 전조선군 주장겸 심판으로 출전 3-23으로 참패
23년 5월 21일 조선야구심판협회를 창설한 뒤 광복 후엔 대한야구협회 심판과 평의원으로 야구해정에 깊숙이 관여
30년 9월 13일 조선일보 사옥에서 유명무실화된 조선야구심판협회 재결성
46년 3월 18일 송현동 조선식산은행 회의실서 발기인 총회 후 조선야구협회 정식 출범
57년말 대한야구협회가 초대부회장 재직 중에 타계한 이영민을 추모하기 위해 "이영민 타격상"을제정하자 협회와 결별
말년엔 동맥경화증으로 칩거하다 71년 8월 서울운동장에서 열닌 제9회 아시아선수권 우승 축승회에 참석 한 뒤 75세를 일기로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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