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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집(金晟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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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력 및 경력

    1919년 1월 13일생(서울출생)
    휘문고등보통학교졸업
    보성전문학교졸업(현 고대)
    휘문고드학교교감
    대한체육회 이사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대한체육회 태능선수촌장

  • 체육출전경력 및 체육활동

    동경세계올림픽대회본부임원참석
    멕시코세계올림픽대회 총감독(선수단)
    뮌헨세계올림픽대회 한국선수단 단장
    몬트리올세계올림픽대회 본부임원(선수단)
    84년 LA올림픽대회 한국선수단장으로 세계 10위권으로 부상시킨 장본인
    대한체육회 부회장

  • 상훈

    미국필라델피아세계역도선수권대회참가 3위
    런던올림픽대회참가 3위입상(역도)
    헬싱키올림픽대회참가 3위입상(역도)
    마닐라아시아경기대회참가 1위입상(역도)
    멜보른올림픽대회참가 5위입상(역도)
    로마올림픽대회 국제심판참가
    서울특별시문화상(체육부장)수상
    대한민국훈장 모란장(대통령)
    체육훈장청룡장(대통령)

김성집 생애 

김성집은 1919년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서 아버지 김순정과 어머니 송석녀의 2남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청운초등학교,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처음 역도에 발을 들여 놓게된 동기는 우리나라 "역도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서상천과의 만남으로해서 인연이 되었다. 김성집은 휘문학교 2학년 때 체육교사였던 서상천이 나누어준 [체력증진법]이라는 역도서를 보고 흥미를 느껴 서교사가 설립한 중앙체육연구소에 들어가 역도훈련을 시작하였다.
당시 서상천은 역도를 통한 민족정신고취에 앞장섰으며 항일 수단으로 역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김성집은 훈련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실력이 놀랄만큼 향상되었고 4학년 때에는 각종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하기 시작하였다.
1936년 5월에 개최된 전일본 역도선수권대회겸 베를린올림픽 참가 선수선발대회에서 우승하였으며, 1938년 올림픽 후보선수 선발전과 전일본 역도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하였다. 이렇게 역도에서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한 그는 28세의 나이로 런던 올림픽 역도 미들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후 제15회 헬싱키올림픽대회에서도 미들급에서 동메달을 따내 우리나라 올림픽 출전 사상 처음으로 2회 연속하여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는 기록을 남겼다. 1954년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2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했고, 36세의 노장으로 1956년 멜버른에서 개최된 제16회 올림픽 경기대회에 출전하엿도 5위에 입상하였다.
40세의 나이로 현역선수생활에서 은퇴할 때까지 김성집은 역도 한국의 좋은 이미지를 세계 만방에 떨쳤으며, 은퇴한 후에도 대한 역도연맹 전무이사외 부회장, 대한체육회 이사, 사무총장, 아시아경기대회 및 올림픽경기대회 임원으로 활약하면서 한국체육 발전에 공헌하였다.
1972년 뮌헨올림픽과 1984년 LA올림픽에는 한국선수단 단장으로 활약하였으며, 체육회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후에는 태능선수촌 촌장으로 국가대표 선수들을 육성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으며, 현재도 체육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땀을 많이 흘린 자만이 승리의 열매를 맛볼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그의 생활철학은 후진들에게 체육인으로서의 성실성에 대한 귀감이 되고 있다.
서훈으로는 서울시 문화상(1954), 국민훈장 모란장(1970), 체육훈장 청룡장(1980)과 대한민국 체육상 공로상(1985), 한국체육기자연맹 제정 체육상 공로상(1982)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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