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체육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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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식(1910-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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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985 체육인

학력
보성전문학교 졸업

경력
베를린 올림픽에 축구선수로 참가
동아일보 기자,
월드컵 한국축구단 코치,
신탁은행 축구팀,
국가대표축구팀 감독,
대한체육회 코칭 아카데미 축구강사

상훈
문화포장

저서
올바른 축구지도


 김용식은 한국축구의 대부이자 축구를 신앙처럼 여기며 살다간 구도자였다.
당대 최고의 선수로, 지도자로 평생 외길 축구 인생을 살다 갔으며 최정민, 함흥철, 이회택, 김호 등 수많은 한국 축구의 역군들을 길러냈다. 46년엔 영국축구협회 발행의 '축구규칙서'를 국내 최초로 번역, 보급시키기도 했다.
황해도 신천 태생으로 10살이던 신천보통학교 3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김용식은 경신중 보성전문을 거치며 빠른 발과 발재간으로 이름을 날렸다.
워낙 기량이 특출해 일제하에 조선 선수론 유일하게 36년 베를린올림픽에 참가했고 광복후 48년 런던올림픽땐 38세의 나이로 코치 겸 선수로 뛰었다.
52년 현역 은퇴 후 54년 스위스월드컵 대표팀 코치, 68년 양지팀, 69년 국가대표 및 신탁은행, 80년 할렐루야 감독을 역임하며 후진양성에 힘썼다.
베를린올림픽에 다녀온 뒤엔 1만일 개인기술 연마에 돌입, 매알 새벽 2시간씩 축구공을 다뤗고 70세에 이르러 마침내 목표를 달성했다. 자신의 회갑연에서 조차 축구묘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페렐도 못따를 개인기란 평판을 들으며 일본 미국 등지에 초청돼 묘기 시범을 보였다.
경신중 시절 단짝이자 당대 축구 맞수였던 채금석과 술, 담배, 도박 잡기, 여자만을 멀리하고 40대까지 선수로 뛸 것이란 여섯가지 약속을 임종 때까지 지켰을 만큼 축구를 위해 청교도적인 생활을 했다.
지난 85년 작고 후 체육훈장 맹호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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