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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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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천재 박계조 인생유전 1학년 3반 박계조 1931년 봄 소위 장안에 공부 잘하는 인재들만이 모인다는 제1보고에 말할 수 없는 개구쟁이요, 장난꾸러기가 신입생 가운데 끼여들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물론 교무실에서도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누가 나서서 광고를 하지도 않았건만 입학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아 1학년을 맡은 선생들 머리엔 벌써 장난꾸러기의이름이 적혀 있었다. 박계조는 수업시간에난 방과 후에나 학생들을 웃기기도 잘했고 곧잘 엉뚱한 짓을 하곤했다.보통보다 모집이 크고 힘이 센 그는 학급동료들 사이에 소영웅처럼 대우 받아 실제의 반장 구실을 했지만 그보다도 더 재미있는 일은 가끔 선생들을 골탕먹이는 것이었다. 1학년을 맡은 선생이면 모두 박계조의 장난에 머리를 저었건만 오직 체조를 맡은 스기하라 선생은 그의 비범한 행동을 주의 깊게 보았다. 그가 2학년 진학하던 해, 하루는 그가 중심이 되어 몇몇 친구들이 점심시간에 배구공을 가지고 운동장 한 가운데서 공뺏기 내기를 하다가 어떤 상급생을 들이받았다. 그는 당황하여 뺑소니를 쳤지만 기어이 힘이 센 상급생에 붙들리고 말았다. 상급생은 다름아닌 배구부 주장 조영규였다. 그러잖아도 신입생 가운데 소질있는 선수를 뽑으려고 돌아다니는 참이었던 조영규는 그를 벌주려기 보다는 그이 패스하는 폼이며 뛰어난 센스에 눈이 끌려 그를 잡았던 것이다. 스기하라는 박계조와 안종호를 잘 키워서 이들이 4학년에 진학하는 2년 후에는 최강팀으로 자부해온 경성사범과도 싸워볼 만하다고 계산하고 있었다. 경성사범은 사실 따지고보면 고등보통학교와는 연령의 차이가 있어 그만큼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었다. 연령의 차이란 경성사범 연수과 2년이 실제 전문학교 과정이었으므로 고등보통학교를 나와 2년까지도 더 뛸 수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박계조가 3학년에 오르자 스기하라는 박계조와 안종호를 함께 조용히 불러 두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이제부터 너희들은 이 유니폼을 입고 우리 학교의 마크가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해주어야 한다. 지금은 B팀이지만 너희들에게 우리 배구부의 내일이 달린 것을 잊지 말아라."고 또박또박 힘을 주어 당부했다. 제1보고팀은 조선신궁대회에 출전하여 숙적 경성사범을 꺾었다. 위세를 떨치던 경성사범도 제1보고의 단단히 뭉쳐진 팀웍을 깨뜨리지는 못했다. 소문은 금새 장안에 퍼졌다. 공식대회에 나가 한두 차례 우승기를 갖고 돌아오자 학교에서는 단번에 배구부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더욱 그 가운데 말썽 많은 박계조에 대한 선생들의 태도는 하루 아침에 일변하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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