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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권 생애 

복싱의 신  

한국 프로복싱의 선구자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을 서정권이다. 

서정권은 동양인 최초로 프로 복싱의 메카인 미국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가든에서 활약했으며, 밴텀급 세계랭킹 6위까지 랭크된 세게적인 복서였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에서 데뷔, 연승가도를 달리다 곧 프로복싱의 본무대인 미국에 진출, 태평양 건너로 믿기지 않는 승전보를 보내온 서정권은 전형적인 인파이터엿다. 빠른 스피드, 중량급에 호가하는 KO 펀치, 서정권의 경기엔 항상 박진감이 넘쳐흘렀다. 

허리가 워낙 유연한 서정권은 현란한 바디웍, 헤드웍으로 상대를 교란시킨 뒤 더킹 모션과 함께 좌우 훅의 콤비 블로우를 날렸다. 서정권의 좌우 훅은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는 것 같은 강한 위력을 뿜어냈다. 이 연발의 속사포에 무너지지 않는 상대가 없었다. 그러나 서정권은 인파이터임에도 불구하고 홀딩이나 클린치가 거의 없는 클린 복서였다. 그의 경기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경쾌함 그 자체였다. 

관중들은 숨돌릴 틈 없이 쏟아지는 그의 현란한 주먹에 완전히 매료되고, 넋을 잃고 빨려 들었다. 정교한 테크닉, 신묘한 스타일, 사람들은 서정권을 ‘복싱의 신’이라 불렀다. 

 

1912년 12월 31일 전남 순천 출생 4남 3녀 중 셋째 

16세때 중동중학교 합격 우연히 단성사에 들렀다가 권투 영화를 보게 된 서정권은 YMCA 권투 도장의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그 작은 키로 뭘 하겠느냐?”는 말에 자존심이 상한 서정권은 그대로 링을 내려와 버린다. 서정권의 첫 번째 복싱 입문은 몇 시간만에 끝이 나 버렸다. 

 

1929년 6월 일본 행 

한국 아마추어 복싱의 거목 황을수를 만나 권투를 배우게 된다. 황을수는 원, 투 스트레이트를 가르쳐 준 뒤 해보라고 했다. 서정권은 황을수가 일러 준대로 주먹을 쭉쭉 뻗는데, 그 폼이 제법 그럴싸했다. 이번엔 스텝을 가르쳐 주었다. 가벼운 몸만큼이나 발동작이 경쾌했다. 

자기가 시범을 보이지도 않았는데, 서정권은 스텝을 밟으며 원, 투 경쾌하게 팔을 뻗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깨끗한 폼이었다. 

황을수는 그날로 서정권을 일본권투구락부에 데려 갔다. 황을수가 소속된 바로 그 도장이었다. 

서정권의 주된 스파링 상대는 라이트급 내지는 웰터급 선수들이었다. 일본권투구랍구의 밴텀급 선수 중에는 서정권의 주먹을 감당해낼 선수가 없던 탓이다. 그런 서정권이었기에 복싱입문 6개월만에 시합에 출전한다. 

1929년 11월 8일, 제5회 메이지신궁경기대회 권투 1부(아마추어) 플라이급에 출전한다. 서정권의 첫 데뷔 무대였다. 그러나 당시 플라이급은 52kg, 서정권의 몸무게는 고작 49kg이었다. 더구나 서정권의 상대는 이토 이사무 전년도 메이지신궁경기대회 플라이급 선수권자였다. 결과는 보나마나 서정권은 KO로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대신 제5회 메이지신궁경기대회는 김정연이라는 한국 프로복싱 최초의 챔피언을 배출한 채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11월 하순 전일본 중학생 아마추어 선수권대회에 출전 간다상업학교의 오카다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며, 통쾌한 판정승을 거두며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일본 고교 복싱의 명문으로 복싱 지망생들에겐 선망의 대상인 식민무역어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조건은 학비 면제 및 복싱에 필요한 모든 편의 제공으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서정권은 식민무역어학교로 옮긴 지 6개월만에 전일본 아마추어 학생선수권대회 플라이급 우승을 거머쥐며, 센슈대학 복싱부로 부터 스카우트 제의을 받는다. 입학금은 물론 학비와 시험면제를 약속 받은 서정권은 1930년 18살에 대학생이 된다.  

 

1930년 전일본 아마추어 선수권대회와 3개 대회에 출전 우승 

1931년 19살의 나이에 서정권은 일본복싱구락부 프로부 창설과 때를 맞춰 프로로 전향한다. 물론 그의 매니저는 와타나베 유지로였다. 

1931년 4월 20일 서정권은 직업 선수로 첫 대전 상대는 가시와무라로 1926년부터 5년째, 일본 플라이급과 밴텀급 챔피언을 지내고 있는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일본 경량급의 최강자였다.  

링에 오늘 서정권을 속전속결만이 이길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하고 어떻게 해서든 초반에 승부르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주무기인 양 훅에 운명을 걸었다. 

1라운드 공소리와 함께 대시한 서정권은 잠시의 주저도 없이 쇼트 블로우를 난사 가시와무라의 얼굴, 가슴, 배, 허리를 쳐댔다. 어찌나 서정권의 주먹이 빠르던지 가시와무라는 경기 시작 1분이 다 되도록 잽 한 번 내보지 못했다. 서정권의 쇼트 블로우에 가시와무라의 가드가 점점 벌어졌다. 바로 이 때를 노린 듯 서정권의 레프트 훅, 라이트 훅이 터지며 경기는 그대로 종료, 시작 1회 1분만에 서정권의 KO승으로 끝이 났다.  

서정권의 두 번째 상대는 이토 이사무 서정권의 아마추어 데뷔전을 패배로 장식한 바로 그 선수다. 아마추어 플라이급 챔피언을 2년 연속 지낸 이토는 바로 프로로 전향, 일본 사상 ‘가장 아름다운 테크니션’이란 명성을 얻었다. 서정권은 6라운드 경기 내내 서정권 특유의 연타를 퍼부으며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 이토에 깨끗이 설육함은 물론 이 경기로 서정권은 부동에 스타덤에 오른다. 

 

프로데뷔 1년 동안 27번의 경기를 가진 서정권은 모두 승리, 27전 전승의 신화를 창조한다. 

27전 전승 9KO승과 3TKO승, 32년 작성된 이 기록에 수많은 일본인 복서가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오늘도 서정권의 전승 신화는 새로운 도전자를 기다리며 일본 복싱사에 깨지지 않는 불멸의 대기록으로 남아 있다. 

1932년 4월 2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1932년 5월 27일 첫 대전을 갖는다. 상대는 재키 카바노 페더급이었다. 긴장된 상태에서 몸이 뻣뻣이 굳어왔으나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서정권의 움직임이 빨라졌고, 4라운드에 혼신의 힘을 다해 레프트 훅을 날리고 주먹을 떼는 순간 카바노의 얼굴에서 피가 주르륵 흐르며 그대로 나가 떨어져 KO승 하였고 그후 내리 3연속 KO승을 거두어 보도 기관들은 ‘동양에서 온 철권 리틀 조’란 애칭으로 연일 서정권의 경기 소식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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