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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김진호(金珍浩 1961~  )

10월


양궁선수.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 불모지였던 우리 나라 양궁을 세계 정상으로 올려놓았다.
경상북도 예천 출신으로, 1975년 예천여중 2학년 때 양궁을 시작해 1978년 방콕아시아경기대회 양궁 부문에서 거리별 전 종목 우승을 했다. 김진호는 1979년 베를린세계선구권대회에서 5관왕, 1982년 제1회 아시아 오세아니아주선수권대회 5관왕, 1983년 세계대회 5관왕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어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서는 3위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3관왕을 차지한 것으로 국가대표 선수 생활에서 은퇴했다.

학력 및 경력

61년 12월 1일 경북 예천 태생
예천여고 졸업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 졸업
75년 양궁 입문
77년 제58회 전국체전 여고부 개인전 대회 타이로 1위
78년 8월 국가대표 상비군 평가회의서 60, 70m 더블라운드서 비공인세계신기록 작성
78년 방콕아시안게임 5관왕
79년 30회 베를린 세계 선수권대회 5관왕
80년 7월 아시아오세아니아주선수권대회서 70m 더블 공인 세계신기록 수립하며 5관왕
83년 롱비치세계선수권대회 5관왕
84년 LA올림픽 동메달
86년 은퇴
한체대 교수
99 전국체전 서울시 선수단 임원

신문기사 내용

[이것은 몰랐지요?]양궁 김진호,「로빈애로」 두번 ‘로빈애로’를 아세요?
화살 뒤에 꽂힌 화살을 양궁선수들은 이렇게 부른다. 화살의 지름은 카본화살이 4㎜, 알루미늄화살이 6㎜정도. 양궁의 최단거리 종목인 30m의 사선에서 봐도 한개의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크기다.
 그런데도 국가대표선수쯤 되면 로빈애로 한 두개는 갖고 있다. 80년대 여류명궁이었던 김진호한국체대교수의 말.  “로빈애로는 실력보다는 운에 달린 것 같아요. 10점짜리인 지름 8㎝의 골드에 화살을 쏘아넣는 것도 힘든데 그 20분의 1에 불과한 화살 뒤를 맞힌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거든요.”
김교수는 여고시절과 대학시절 한번씩 로빈애로를 만들었다. 이 화살은 집에 곱게 보관되어 있다.
로빈애로가운데 최고는 자신의 화살이 두개 겹친 것. 한 표적지에 여러명이 쏘기 때문에 로빈애로의 대부분은 다른 선수의 화살을 맞힌 것이다. 때문에 자신의 화살을 다시 쏘아맞힌 로빈애로는 ‘가보’로 물려줄 만하다.
96애틀랜타올림픽 2관왕 김경욱은 방송사가 과녁 한가운데를 파서 장치한 초소형 카메라 렌즈를 2차례나 맞혀 부쉈다. 렌즈의 지름은 1㎝. 그런 한국양궁이니 로빈애로도 충분히 ‘실력’으로 나올 만하다.

〈최화경 기자 : 1998/03/02(월) 20:08〉 


[양궁 전종목석권]소수정예+과학훈련+지도자 『삼위일체』

  한국양궁이 국제대회 사상 처음으로 남녀 개인전과 단체전을 휩쓴 것은 소수정예에 의한 과학적 훈련의 결실로 평가된다.지난 79년 베를린대회당시 김진호가 여자 개인, 단체전을 휩쓸면서 시작된 한국양궁의 영광은 24일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끝난 제39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한국양궁은 등록선수가 불과 2천여명, 1만8천여명의 일본, 1만명이상의 미국등에 비해 턱없이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한국양궁이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 국제대회 정상을 지켜온 것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경기력을 극대화시킨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국제양궁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이를 선수들에게 지도한 국내 지도자들의 능력은 이미 세계적으로 정상급이라는 평가.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선 각국 코칭스태프중 이기식 전 국가대표감독이 호주대표팀을 이끄는 등 5개국 코칭스태프가 한국양궁의 노하우를 세계에 전하고 있는 것. 한국양궁의 흔들림없는 경기력은 대표급 선수들간 기량차가 적어 국내 대표선발전을 통과하는 것이 각종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여기에 지난해까지 한국양궁을 이끈 정몽구 현대그룹회장(대한양궁협회 명예회장)의 각별한 관심 등 협회의 지원체계 역시 한국양궁의 세계정상을 이끈 원동력.각국 심한 견제… 기술개발 시급 그러나 한국양궁도 보다 많은 노력을 하지 않으면 추월당할지 모를 만큼 각국의 심한 견제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 세계정상을 지키기위해서는 기술개발이 시급하다는 주문이 많다.

〈안영식 기자〉 

  한국의 간판종목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양국의 세계제패 역사는 79년 서베를린서 열린 제30회 세계선수권대회 때 김진호로 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대회에서 단발머리 여고생 김진호는 여자 개인종합과 거리별, 그리고 동료들과 힘을 합한 단체전에 이르기까지 무려 5관왕에 오른 것이다. 그녀는 베를린 세계선수권에 이어 다시 83년 로스앤젤레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또 한번 5관왕에 등극하는 초인적인 능력을 과시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김진호는 78년 제8회 방콕 대회, 82년 제9회 뉴델리대회 개인종합을 휩쓰는 등, 당시 세계 양궁계서는 그의 능력은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불행하게도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어 80년 모스크바 때는 한국의 불참으로 기회를 놓쳤고, 84년 LA 올림픽에선 후배 서향순과 중국의 리징잔에 이어 동메달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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