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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강만수(姜萬守 1955~  )

11월


배구 지도자.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우리 나라 배구계에서 공격수로 이름을 떨쳤다. 1972년 제20회 뮌헨올림픽경기를 비롯해 제21회 몬트리올올림픽경기. 제23회 로스앤젤레스올림픽경기에 우리 나라 대표 선수로 참가했다. 경상남도 하동 출신으로 성지공업고등학교와 한양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엘지그룹. 현대자동차서비스팀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국민훈장, 백상체육대상을 수상했으며 1997년 8월 현재 현대자동차서비스팀에서 감독을 맡고 있다.


학력 및 경력

  55년 8월 24일생 하동 출생
  성지공업고등학교 졸
  한양대학교 졸
  일 와세다대학교 육학과 졸
  일 동해대 대학원 체육학과 졸
  73년 모스크바 하계유니버시아드 경기대회 남자배구 동메달
  74년 테헤란 아시아 경기대회 은메달
  76년 몬트리올 올림픽 경기대회 6위
  77년 소피아 유니버시아드 경기대회 동메달
  78년 방콕 아시아 경기대회 금메달
  79년 멕시코 유니버시아드 경기대회 금메달
  82년 뉴델리 아시아 경기대회 동메달
  84년 LA 올림 픽경기대회 남자배구 5위
      현대자동차서비스 배구단 감독
  97년 남자배구국가대표팀 감독

상훈
  국민훈장
  백상체육대상

저서
' MVP를 위하여'

83년 11월 도쿄, 제3회 아시아선수권대회 겸 LA 올림픽 예선전을 참관한 소련팀 감독은 한 선수를 가리켜 "저처럼 모든 조건을 갖춘 공격수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 동양에도 저런 선수가 있다는게 경이롭다"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가 바로 강만수였다.
 73년 모스크바유니버시아드 대회때 동메달을 딸 무렵부터 주전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강만수는 78년 이탈리아 세계선수권 4강, 같은해 방콕 아시안게임 우승, 이듬해 멕시코 유니버시아드 제패라는 연속된 금자탑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한국 배구에서 처음 맞았던 이 일련의 성과를 강만수 혼자 해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가 없었더라면 도저히 이루기 힘든 업적들이었다.
 80년 LA 올림픽을 끝으로 12년만의 대표생활을 마감했다. 이후에도 그는 와세다 대학 유학시절 숱한 화제를 뿌렸으며 귀국해 중계방송 해설자, 비치 발리볼 선수등 다양한 활동을 거쳐 대표팀서도 지휘봉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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