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체육 인물 top04.gif

7월

손기정(孫基禎 1912~  )

9월


체육인.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났다. 양정고등보통학교를 나와 일본 메이지 대학 법과를 마쳤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대회에서 마라톤 경기에 우승하였다.(2시간 29분 19초) 이 일은 그 무렵 일본의 억압 밑에서 괴로움을 받고 있던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동아일보는 이 사진을 신문에 내면서 일본 국기를 지워 버렸는데(일장기 말살 사건) 이 사건으로 광복될 때까지 신문을 내지 못하였다. 대한 체육회 부회장, 육상 경기연맹 회장, 방콕 아시아 경기 한국 대표 단장 등을 역임했으며 육상 경기 연맹 고문, KOC 위원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학력 및 경력

1912년 8월 29일 평북 신의주 출생
1933년 제3회 동아마라톤(세종로∼영등포역 구간) 우승
1935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일본대표 1차선발전 우승(2시간 26분 14초)
              일본 메이지신궁 체육대회 마라톤 우승(2시간26분 42초)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2시간 29분 19초)
1937년 양정고등보통학교 졸업
1940년 일본 메이지대 법과 졸업
1948년 대한체육회 부회장
1963년 육상연맹회장
1979년 한국 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1981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조선방직 주식회사 상무이사
서울제분 주식회사 대표이사
부관페리 주식회사 이사
동양실업 주식회사 대표이사회장

체육 출전경력 및 체육활동

미국 보스턴 올림픽 대회감독
대한체육회부회장
스위스 국제 육상경기총회 한국대표 참가
독일 세계 군 육상 경기대회 참석
대한육상경기연맹회장
스위스로잔 남북혼성팀 구성회의 참석
제5회 동아세아경기대회 단장
제20회 뮌헨올림픽 특별초청 참석
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 특별초청 참석
영국 런던 올림픽 대회 임원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대회 감독
제17~18회 로마, 일본 동경올림픽 대회 참가
제8회 독일베를린 국제마라톤 대회 특별초대
1982. 9 독일 베를린 국제육상경기대회 특별초대
제70회 국제육상경기대회 총회 특별초대(희랍)

상훈

톡일베를린 올림픽 대회 마라톤 금메달 획득
미국 헬므스 체육상 아시아 대표
일본조일 신문사 체육상
국제육상경기연맹상
국민훈장 모란장
국제육상경기연맹 특별상

신문기사내용

[어린이회관] 「손기정 전시관」해방 54년만에 햇빛
 한국마라톤의 원로 손기정(87)의 올림픽 제패와 일장기 말소 의거를 기리는 ‘손기정전시관’이 서울 어린이회관 안에 마련된다. 육영재단(이사장 박서영)은 13일 어린이들에게 나라의 소중함을 고취 시키기 위해 오는 11월께 어린이회관 과학동 1층에 80평 규모의 손기정전시관을 개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곳에서는 36년 베를린올림픽 금메달을 비롯,그리스투사 투구와 당 시 보도 사진과 상장, 손기정옹이 고 박정희 전대통령에게 보낸 감사편지 등 손옹이 지난 70년대 육영재단에 기증한 모든 기념품들이 전시된다.   손옹의 소장품들은 그동안 재단의 재정난 때문에 전시되지 못하고 창고에 보관돼 왔으나 “손선생님이 살아계실 때 전시관을 열자”는 박서영 이사장의 결정으로 20여년만에 햇빛을 보게 됐다. 이균식 재단사무국장은 “지난 4월부터 공사에 들어갔으며 10월쯤 완공하는 대로 개관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국가 의식이 갈수록 희미해져 가는 요즘 청소년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한육상연맹 관계자는 “황영조가 먼저 기념관을 열어 선생을 볼 면 목이 없었는데 어린이회관측에서 전시관을 마련했다니 뒤늦게나마 잘 됐다”고 말했다. <99/8/13 '연합' >
 
2시간 30분 벽 처음 깬 손기정
1924년 파리 올림픽부터 정규코스의 길이가 42.195km로 정해진 마라톤의 기록은 1930년대 중반까지 2시간 30분대의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당시만해도 "마라톤에서 2시간30분대가 인간의 체력한계다"라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마라톤에서 2시간 30분대의 벽을 깨뜨린다는 것은 국제육상계에 큰 충격을 줄 만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1935년 당시 일제의 지배 아래 놓여있던 한국의 손기정이 세계 최초로 2시간 30분을 크게 깨뜨리고 2시간 26분14초의 놀라운 세계최고기록을 세워 국제육상계를 경악케 만든다. 그 해 일본 육상경기연맹은 신궁경기장에서 순환 코스를 마련하고 3월 21일 이 새 코스 개설을 기념하는 마라톤대회를 열었다.
경기 첫머리부터 맹열한 스피드로 선두에 나선 손기정은 10마일(약16km)지점을 55분 44초로 통과해서 2위 스즈키와의 차이를 시간으로 따져 3분가량 벌여놓는 독주였다. 후반 네리마가이도를 나와 고슈가이도를 달릴 때 손기정은 전반에 페이스를 너무 올렸던 탓인지 속도가 좀 떨어져 스즈키와의 거리가 좁아지긴 했으나 끝까지 여유있는 주법으로 선두를 지켜 2시간26분14초의 놀라운 기록으로 테이프를 끊었다.  
한편 서울에서는 동아일보가 '육상계의 혜성 손기정, 세계최고기록을 수립'이라는 호외까지 찍어냈을 정도다.

"1984년 로스엔젤스 올림픽때 일본의 마라토너 세코가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마라톤슈즈를 신었다고해서 화제가 되었다. 가벼운 신발은 옛날부터 마라톤선수의 꿈이었다. 나도 신발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보려고 칼로 신발바닥을 조심조심 깎아내곤 했다"  손기정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달리기위해 신발바닥을 깎아냈을 뿐 아니라 가위로 러닝셔츠를 도려내고 팬티를 잘라보기도 했다.

세계최초로 2시간 25분대 진입
1935년 4월 일본인쪽의 경기단체인 조선육상경기협회가 주최한 제1회 마라톤대회에 손기정이 출전했다. 언제나 코스의 길이가 문제가 되기 때문에 대회본부는 사전에 42.195km보다 520m를 더 길게 거리를 잡아두었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코스 길이가 짧아서 기록이 좋았을 것이라는 구설수를 막을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손기정은 반환점을 1시간 12분 25초로 돌고 이보다 30초 늦게 안삼진이 뒤따라 돌아다. 하지만 안삼진의 추격은 오래 계속되지 못해 변대행, 김성덕ㅇ게도 뒤져 4위에 머물고 만다.
손기정은 후반 변대행을 12분 52초나 떼어놓고 2시간 25분 14초의 그야말로 대단한 세계최고기록으로 우승했다.
마라톤 경기가 생긴이래 풀코스에서 2시간 25분대로 달린 선수는 손기정이 처음이다. 다음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일본육상계는 경악한다. 당시 2시간 25분대란 인간체력의 한계를 벗어난 경이적인 기록으로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육상경기연맹은 자기네들이 공인한 콧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이 놀라운 기록도 비공인 취급을 해 버린다. 하지만 단 두달사이에 비공인기록이지만 2시간26분14초 그리고 2시간25분14초의 세계최고기록을 마크한 손기정의 실력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손기정이 2시간25분대 진입으로 강한 자신감을 되찾게 된 것이다.

드디어 공인받은 세계 최고기록
1935년 11월 3일 베를린 올림픽파견 2차선발전을 겸한 제8회 메이지신궁대회가 열렸다. 이 선발전에서 상위권 안에 들면 베를린 올림픽 파견후보선수로서 꼽히게 된다. 이날 신궁경기장의 스탠드 그리고 잔디에는 4만을 헤아리는 관중들이 몰려 마라톤 세계최고기록 수립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낮12시 55분 스타트를 끊은 30명의 선수 가운데에는 러닝셔츠 앞가슴에 양정의 머리글자 양을 달고 뛰는 손기정이 끼어있었다. 반환점 통과 랩타임은 선두 나카무라가 1시간 13분 30초. 손기정이 그보다 1초 뒤진 1시간 13분 31초였으며 그 뒤를 쫓는 시오아쿠, 사가라의 두사람은 1시간 14분대. 그리고 스즈키는 1시간15분대였다. 반환점을 돌자마자 나카무라를 제끼고 선두에 나선 손기정은 순식간에 피치를 올리더니 나카무라와의 거리를 500m 그리고 1000m로 벌여나갔다.아카사카미츠케의 오르막 길은 마지막 난관이다. 약 1km에 이르는 오르막길을 올라서면 평탄한 아오야마도오리에 들어서서 은행나무 가로수 사이를 달리면 골이 눈앞이다.
여전히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질주한 손기정은 관중들의 환호 속에 신궁경기장에 뛰어들었고 마지막 직선코스를 마치 단거리주자처럼 쏜살 같이 달려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2시간 26분 42초. 그러니까 지난 4월 이케나카가 수립한 세계최고기록 2시간 26분 44초를 2초 단축한 타임으로 손기정은 우승했다.
손기정의 2시간 26분 42초는 미국의 이름 난 스포츠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스포츠연감(1995년판)에도 올라있다.

손기정은 민족정신이 강했다.
올림픽에 출전한 손기정은 활달한 성격에 싸인 요청을 받으면 서슴없이 한글로 '손긔졍'이라고 쓴 자신의 이름에 곁들여 나라 이름은 KOREA라고 적었다. 맞춤법이 오늘날과 달랐던 그때 손기정은 쇤귀졍이라고 썼던 모양이다. 때로는 '손귀졍 KOREA'옆에 한반도를 그려 넣기도 했다.
"1932년 로스앤젤러스올림픽에 일본대표 선수로 출전했던 김은배 선배가 현지에서 사인 요청을 받으면 한글로 써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대로 따랐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글로 사인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손기정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김은배는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민족정신을 지닌 한국인으로서도 후배에게 강한 영향을 지녔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손기정은 선수촌 안팎에서 외국인이 "어디서 왔소?"라고 물어보면 "KOREA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에서 우승한 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싸인하기로 되어있는 독일의 국빈방명록에도 '손긔졍'이라고 한글로 뚜렷이 적었다.
일제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일본인들을 KOREA로 표기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참고문헌 : 이야기 한국체육사1. 베를린의 월계관, 고두현 지음, 서울올림픽기념 국민체육징흥공단, 1997>

 

bar_s_1.gif

HOME | 환영사 | 방명록 | 자료실
Copyright(c)1999 -2007 SPOSEUM Co.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