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아테네 올림픽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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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1896.4.6-4.15

  기원전 329년 고대 올림픽 제전을 위해 건설됐던 팬아테나익 스타디움, 수세기를 거치면서 수리되고 다시 복구됐다가 방치됐던 팬아테나익 스타디움이 대리석으로 새롭게 장식되고, 머리핀 모양으로 길고 홀쭉한 운동장이 다듬어졌다. 고대 올림픽이 중단된지 1천 5백 3년만인 1896년 4월 5일 부활절을 맞아, 그리스 왕 조지 1세의 역사적인 개막선언과 더불어 현대 올림픽이 막을 올렸다.
  

  그리스,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헝가리, 스웨덴, 덴마크, 칠레, 불가리아, 오스트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등 13개국, 311명의 선수들이 기대 속에서 출전했다. 관중들로 꽉 찬 경기장, 담장마다 걸터앉은 관중, 운동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산 언덕의 구경꾼, 스타디움을 둘러싸고 있는 골목길마다 개막식의 축제 분위기가 넘실댔다.

  세계 평화와 친선을 목표로 부활된 현대 올림픽은 프랑스 교육자 쿠베르탱 남작의 정열의 열매였다. 그는 일찍이 청소년 교육에 EMt을 두고 당시 프랑스 교육의 맹점인 이론 교육 일변도의 교육제도에 체육 교육을 불어넣어 교육 혁명을 시도했다.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실패한 뒤 사기가 떨어진 프랑스 청소년들의 의욕을 돋우기 위해 스포츠를 통해 몸과 마음을 활달하게 개발하자는 쿠베르탱의 생각이었다.  

  1888년 그는 26세 때 학교 체육 교육을 진흥하기 위해 프랑스 체육연맹의 결성에 참여했고, 체육 잡지를 발간, 스포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노력했다. 그는 또 체육활동이 활발한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북미등을 순방하다가 올림피아 동산을 찾아보고 올림픽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교육장이라고 판단, 필생의 사업으로 올림픽 부활을 결심했다.

  1893년 쿠베르탱은 파리 솔본느 대학 강당에서 국제 체육 연맹 회의를 주재, 각국에 체육 단체를 국제 체육 연맹으로 묶는데 성공했고, 1894년 6월 14일 국제 체육 연맹 정기 총회에서 정식으로 올림픽 부활을 발기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각국이 압도적으로 올림픽 부활에 찬동했고, 그리스 대표가 첫 대회를 고대 올림픽 발상지였던 아테네에서 개최할 것을 제의, 드디어 1896년 제1회 올림픽 대회가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렸다.

  현대 올림픽 첫 회가 아테네에서 열리기로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리스 국민들은 열광했지만, 그리스 정부는 극심한 경제난과 정정의 불안으로 대회를 반납하려 했다.
  쿠베르탱이 직접 그리스를 방문하고 콘스탄틴 황태자를 찾아가 올림픽 개최에 대하여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쿠베르탱의 열의에 감동한 황태자가 올림픽 조직 위원회 명예위원장직을 수락했고, 국민들의 성금, 기념 우표 발행, 입장권 수입으로 팬아테나익 스타디움의 보수 등 준비가 진행됐다.

  신대륙 미국에서는 프리스턴 대학의 교수이자 초대 IOC 위원인 윌리암 슬론 교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미국 선수들이 대서양을 건너 참가했다.

국가별 메달 집계

국가명

합계

미국

 

11

6

17

그리스

 

10

20

30

독일

 

6

4

10

프랑스

 

5

3

8

영국

 

3

3

6

헝가리

 

2

1

3

호주

 

2

1

3

스위스

 

2

0

2

오스트리아

 

1

2

3

덴마크

 

1

2

3

스웨덴

 

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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