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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 개요top04.gif  사진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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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 8. 24~9. 4. (16개국 참가)

이스라엘·대만 선수단 입국 거부 …IOC 인니에 중 징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제4회 아시안게임은 대회 시작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개최국인 인도네시아가 정치적인 이유를 들어 이스라엘과 자유중국선수단의 입국을 거부함으로써 문제가 불거졌다. 인도네시아가 양국 선수단의 입국을 거부한 이유는 대만의 경우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수카르노 정부에 대한 반대세력을 도왔기 때문. 한편 이스라엘은 입국을 시킬 경우 아랍세력과 마찰이 생길 우려가 있다는 것이 그 원인이였다.

어쨌든 양국 선수단은 비자를 발급받지 못했고 인도네시아의 이러한 조치는 여러 가지 파문을 불러왔다. 우선 AGF 창설맴버인 자유중국은 이 문제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에 제소하여 인도네시아 징계를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인 IOC는 이스라엘과 자유중국의 입국을 끝내 거절하면 대회 승인을 철회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처음의 방침을 고수, 대회를 강행했다. 이로 인해 다음 해인 1963년 2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IOC집행위원 회의에서 결국 무제한 자격정지처분을 받았다. 또한 국제육상연맹(IAAF)과 국제연도연맹( IWF)도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나라와 선수 개인에 대해서는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역도 경기는 열리지 못했고, 육상도 일부 국가만 참석하는 홍역을 치뤘다.

1962년 8월 24일 . 우여골절으라 겪은 끝에 드디어 제4회 아시안 게임이 자카르타에서 개최됐다. 참가인원은 18개국 1천5백21명. 한국은 1백73명의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 상위권 진출을 노렸다.

자카르타의 8월의 살인적 무더위로 대부분의 경기는 오후4시 이후에 거행되었는데 이는 대회조직위원회의 경기기록을 중시한 배려 때문이었다.

일부 국가만 참가한 가운데 열린 육상은 일본이 18개의 금메달을 독식했고,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인 수영에서도 일본의 아성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25개의 금메달 중 버마 선수와 인도네시아 선수가 나머지 3개의 금메달을 차지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개최국 인도네시아는 배드민턴에서 6개의 금메달 중 5개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한편 구기종목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끌었던 필드하키에서 올림픽 6연패의 인도를 신예 파키스탄이 2대 0으로 완파하며 일반의 예상을 뒤엎었다.

9월 4일 하호 4시 12만명의 관중이 모인 가운데 자카르타 메인스타디움에서 벌어진 한국과 인도의 축구 결승전을 끝으로 12일간의 열전을 끝냈다. 정치문제로 얼룩졌던 이 대회는 일본이 대회 4연패를 이룩하고 인도와 개최국 인도네시아가 2,3위를 차지한 가운데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pin01d.gif 국가별 메달 집계

순위

국가명

합계

1

일본

73

56

23

152

2

인도

10

13

10

33

3

인도네시아

9

12

27

48

4

파키스탄

8

11

9

28

5

필리핀

7

6

24

37

6

한국

4

9

10

23

7

말레이시아

2

4

8

14

8

타이

2

3

4

10

9

버마

2

1

5

8

10

싱가포르

1

0

2

3

11

스리랑카

0

2

3

5

12

홍콩

0

2

0

2

13

아프가니스탄

0

0

1

1

14

월남

0

0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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