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박물관

제1회 뉴델리 아시안 게임 개요top04.gif     사진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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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3. 4~11. (11개국 참가)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전 세계에 드리워졌던 전쟁의 공포가 사라진 것은 1945년 8월 15일. 한국을 비롯한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신생 독립국가들은 해방의 감격에 들떠 있었다. 이러한 기운을 타고 인도의 네루 수상과 몇몇 지도자들은 스포츠를 통한 선의의 경쟁을 벌임으로써 아시아인의 단합과 화합을 꾀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드디어 1951년 3월4일 인도 뉴델리에서는 아시아인의 `영원한 전진' (ever - onward)을 다짐하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제1회 ? "4년후 제2회 대회가 개최되는 마닐라에서 모든 아시아 각국의 젊은이들을 다시 만날 것을 틱첸?게임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뉴델리 국립경기장에 모인 3만여 명의 관중들로 초만원을 이룬 이 날 행사는 맑고 푸른 창공과 함께 아시아 화합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알파벳 순서에 따라 아프가니스탄 선수단을 선두로 미얀마,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이란, 일본, 네팔,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선수단이 입장했고 주최국 인도가 올림픽 관례에 따라 맨 마지막으로 입장했다. 11개국 6백여 명의 선수가 보무 당당하게 본부를 통과할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열렬한 박수와 환성이 터져 나왔다. "제1회 뉴델리 아시안게임의 개회를 선언합니다" 라는 프라사드 대통령의 개회 선언에 이어 축포발사가 이어졌고 군악대의 팡파르가 장엄하게 연주되면서 아시아인의 향연은 그 절정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은 아시아 경기연맹 (AFG :Asian Games Federation) 에는 참석했으나 6.25동란이라는 동족상잔으로 인해 이 대회 참가를 단념할 수 밖에 없었다.

뉴델리의 공식 경기는 3월 5일 필리핀과 버마의 농구 경기를 시작으로 육상, 수영, 축구, 농구, 사이클, 역도의 총 6개 종목. 대회사상 첫 금메달의 영광은 싱카포르의 네오 취 콕 선수에게 돌아갔다. 중국계 혼혈아인 그는 자유형 1천 5백미터와 4백미터, 8백미터 그리고 4백미터 계영에서 우승을 차지해 4관왕에 오르면서 뉴델리 대회의 최대의 스타로 부상했다. 한편 일본은 육상에서 20개와 사이클에서 금메달 4개를 독식함으로써 종합우승의 영광을 안았고 개최국인 인도는 금메달 15개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열전 8일간의 경기는 3월 11일 육상 4백미터 계주 경기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었다. 팡파르가 우렁차게 울리던 개회식장은 폐회식을 기다리고, 관중들은 조용히 스탠드를 지키고 있었다. 아시아 경기연맹 (AFG :Asian Games Federation) 총회기가 국기 게양대 중앙에 올랐고 주최국 인도 국기가 오른쪽에 , 왼쪽에는 1954년 2회 대회 개최지(마닐라)로 결정된 필리핀 국기가 게양되었다.

약속합니다"라는 야다빈드라싱 AGF 회장의 폐회선언이 이어졌다. 역사상 첫 번째 맞은 아시아인의 꿈과 화합의 제전은 꺼져가는 성화를 뒤로 하고 마닐라 대회를 기약하고 있었다.

pin01d.gif 국가별 메달 집계

순위

국   가  명

합계

1

일          본

24

20

14

58

2

인          도

15

18

19

51

3

이          란

7

5

2

14

4

싱 가 포 르

5

7

3

15

5

필   리    핀

5

5

7

17

6

스  리 랑 카

0

1

0

1

7

인도네시아

0

0

4

4

8

버          마

0

0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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